여주문화답사기행문5일차 - 영릉과 효릉

이영이 2008-01-10

아침 일찍 서둘러 투표를 마치고 아이들과 답사에 참가한다. 오늘의 답사코스는 영릉과 효릉. 코스만 듣고 보면 별다른 흥미를 끌 수 없을 것 같지만 내겐 아니다. 두 곳 모두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닌 곳이지만 올 때마다 보이는 것이 달라 남들이 모르는 보물을 발견한양 즐거운 곳이 이곳인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서인지 평상시와는 달리 영릉에 사람이 거의 없다. 늘 차와 사람으로 북적인 곳이었는데, 오늘은 현장학습 나온듯한 몇몇의 초등학생을 제외하곤 우리일행이 전부다.
 
전시관부터 동상, 반듯한 길, 관람객들이 주는 먹이로 징그러울 정도로 커져버린 잉어들,축구장을 연상케 하는 잔디밭까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성역화한 느낌 때문에 영릉안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나였다. 그래서 영릉보다는 효릉을 훨씬 좋아하고 영릉에 와도 영릉안쪽보다는 바깥에서 머문다. 그런데 오늘의 영릉은 느낌이 새롭다. 자욱이 깔린 안개와 옛 산수화에서 본듯 한 소나무의 눈꽃까지.. 온전히 무덤만 보인다.

모두들 경치에 취해있는데 오늘 답사의 안내자인신 여주문화원 조성문국장님이 세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보통의 왕릉답사가 주로 능의 양식이나 석물, 주변 풍수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되어있는데 반해 오늘의 주제는 그 무덤의 주인공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여주민예총에서 기획한 문화기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보통 여느 문화답사와는 다른 주제 선정이었다. 그리고 그 주제 속에 늘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석물,비석,글씨도 그곳에 스며든 사람들의 마음과 사연이 읽혀질 때 그 느낌이 분명 다르다는 것! 이번 답사가 준 소중한 경험이다.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갈 테니 너는 태평성대를 열어라” 건국 초 왕권과 신권의 다툼 속에 확실한 왕권을 다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던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로부터 세종시대의 여러 업적까지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세종의 업적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사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고, 더군다나 여주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세종의 얼’ 이라 하여 교실 게시판마다 붙여놓고 보고 또 보고한 터라 오히려 지나친 영웅주의가 아닌가 하는 반감마저 갖게 돼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조성문국장님은 세종의 인간적인 따뜻함이 엿보이는 몇몇 이야기를 해주셔서 나의 편견과 오해를 깨주신다.

태종은 왕권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인 외척제거 작업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한 인물인데 그 일환으로 아들 세종의 장인을 사사하고 장모마저 노비로 삼았다. 세종은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린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마음을 헤아려 그녀를 따뜻이 감싸 안고 아끼었다 한다. 이곳 영릉이 조선 최초의 왕과 왕비의 합장릉인 이유가 그런 세종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세종이 신하들을 아낀 여러 일화중 아무리 낮은 직급의 관리라도 이름을 외워두고 일일이 그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내가 교사여서 잘 아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백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과연 얼마나 불러본 적이 있는지!

또한 세종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 좋은 예가 여자노비의 출산휴가 이야기다. 당시 여자노비가 아이를 출산한 뒤 열흘이 지나면 몸을 추스르고 일하러 나가야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세종은 여자노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하고 더 나아가 남편 노비도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같은 기간의 휴가를 주도록 하였다한다. 요즘 출산율 저하를 막겠다고 정부와 지자체들이 내놓는 갖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남편의 출산휴가까지 보장하자는 이야기는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500년도 더 전에 엄연한 신분사회에서 그런 과감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그 어느 선거보다도 많은 후보들이 나름의 공약을 내걸고 나왔고 그들중 한명에게 나도 한표를 주고 왔다. 오늘 누가 새 대통령이 되든 500여년전 여성, 하급관리,일반 백성,노비에 이르기까지 소외받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했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을 가진 그런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효릉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영이 / 세종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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